굳이 나눠야 한다면 나는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쪽이 익숙하고 편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말을 많이 하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집에 돌아오면 몹시 피곤합니다. 잘하지도 않는 말을 종일 쏟아내고 나면 탈진 상태에 이릅니다. 인풋(Input)은 없는데 아웃풋(Output)만 있으니 기운이 빠지고 지치는 게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말을 가능한 줄여야겠다고. 말을 많이 하면 아무래도 안 해도 될 말, 불필요한 말, 쓸데없는 말들이 섞이기 마련입니다. 자리가 끝나고 혼자가 되면 후회가 밀려오고 ‘좀 참을 걸, 왜 그랬을까’ 하고 자책하게 됩니다.
가만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소셜미디어에도 말이 넘쳐납니다. 고수들의 깊은 지식과 지혜, 통찰이 담긴 사상을 접하면서 배우기도 하지만 걱정스러운 면도 적지 않습니다. 가짜뉴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정확하지 않거나 근거가 불분명한 정보, 섣부른 예단, 보태지 않아도 될 중언부언, 굳이 하지 말았어야 할 사족들이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물론 같은 사안에도 수십 수백 가지 다른 의견과 다양한 반응을 접하면서 과연 자유민주주의 나라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오히려 ‘같은 편’끼리 경계가 선명해지면서 확증편향은 깊어집니다. 나 역시 안 그런 척, 잘난 척하지만 그런 면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자주 예를 드는 출판계만 봐도 말을 하고 싶은 마음들이 느껴집니다. 책이 안 팔리는 건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새로운 책은 매일 계속 나옵니다. 자기 생각과 말을 쏟아내고 싶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업 작가가 아닌데도 책을 내는 사람, 특히 생애 처음으로 책을 내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저마다의 생각을 담아내는 것이니 탓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반가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말하고 드러내는 사람은 늘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어쨌든 시대는 듣고 읽기보다 말하고 쓰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춥고 힘든 시절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덕담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말은 어쩌면 인생이 장미꽃길만 걸을 수 없다는 역설인지도 모릅니다. 겨울이 그저 춥고 바람 부는 시절이 아니라 마침내 봄이 오게 하려면 감정을 드러내고 해소시킬 자신만의 통로 한둘쯤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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