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0 08:37  |  오피니언

[신형범의 千글자]...봄, 미인, 꽃샘추위

[신형범의 千글자]...봄, 미인, 꽃샘추위
중국 역사적 인물 중 ‘4대 미녀’를 꼽으라면 한나라 왕소군(王昭君), 춘추시대 서시(西施), 삼국시대 초선(貂蝉), 당나라 양귀비를 꼽습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소설 속 인물로 실존 흔적이 없는 초선 대신 초패왕 항우의 애첩 우희(虞姬)를 넣기도 합니다.

허세가 심하고 과장하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왕소군의 미모를 보기 위해 기러기들이 내려 앉을 정도여서 ‘낙안’, 서시는 강의 물고기들이 넋을 잃고 가라앉을 정도였다고 해서 ‘침어’, 초선은 달조차 낯을 가렸다고 해서 ‘폐월’, 양귀비는 꽃이 부끄러워했다는 문학적인 수사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특히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자신의 시에서 한나라 원제 시절, 흉노 왕에게 끌려간 궁녀 왕소군의 심정을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이라고 노래한 데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천년의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도 이맘때면 흔히 인용되는 말이 됐습니다.

엊그제 내린 뜻밖의 ‘3월 폭설’과 떨어진 기온 때문에 유독 이 말을 인용한 글과 말들이 많았습니다. 따뜻한 기운이 감돌면서 봄이 오는가 싶더니 한순간 겨울을 다시 움켜쥔 듯한 눈과 바람이 몰아쳤습니다. 본격적인 봄이 오기 전, 자연이 던지는 마지막 시험이자 생명의 힘을 단련시키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더 깊고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꽃망울은 단단한 생명을 품으라는 격려이기도 하고요.

기상청은 현재 4계절을 평균적으로 봄 74일, 여름 127일, 가을 62일, 겨울 102일간으로 산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상기후로 가을이 짧아지면서 통상 ‘1년 3계절’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마케팅에 민감한 산업계에선 이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1년을 6계절로 세분화한다는 겁니다. 봄 88일, 여름은 초여름, 장마, 늦여름 이렇게 세 계절로 나눠 188일 그리고 가을 61일과 온난화로 겨울은 28일로 가장 짧게 계산해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시장에 내놓는다는 전략입니다.

4계절이든 6계절이든 어떻게 구분하더라도 엊그제 추위는 ‘꽃샘추위’라는 의견에 모두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꽃샘추위는 봄의 소중함을 알리는 메신저이기도 합니다. 따뜻한 햇살과 포근한 기운을 ‘봄’이라고 당연하게 여기면 그 가치를 온전히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는 것처럼 엄혹한 추위를 겪고 난 뒤에 맞는 따스한 햇살이 더욱 고맙고 감격스러운 법입니다. 고난과 인고의 시간을 겪은 후에야 일상의 평범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는 것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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