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千글자]...청첩장 문구 쓰다가](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4010837070783746a9e4dd7f1439204239.jpg&nmt=30)
부탁하는 사람은 주로 신랑신부의 부모 중 한 사람일 경우가 많은데 경험상 신랑신부 두 사람에 대해 충분한 정보가 있으면 내가 봐도 괜찮은 글이 써질 때가 많습니다. 반면 부모나 신랑신부에 대해 잘 모르면 소위 알맹이 없는 글이 되는 것을 자주 경험합니다. 그런 걸 보면 쓰려는 대상에 대해 충분히 잘 알아야 공감 가는 좋은 글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단문을 누구보다 힘 있게 잘 쓰는 작가 김훈의 인터뷰에서 언젠가 본 내용입니다. 《하얼빈》을 쓰면서 ‘이토는 죽었다’로 마무리했는데 너무 밋밋한 것 같더랍니다. 고민을 하다가 ‘곧’이라는 단어를 하나 넣어서 ‘이토는 곧 죽었다’로 고쳤습니다. 그런데 ‘곧’이 대체 얼마큼인지 애매해서 ‘곧’을 뺄까 넣을까를 두고 또 한참을 고민했다고 했습니다. ‘곧’이라는 한 음절도 김훈처럼 이렇게 신중하게 골라 써야 짧은 글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작가는 아니지만 글 쓰는 입장에서 보면 평소 보던 것들을 다르게 보고 매일의 일상도 새롭고 특별하게 느끼는 연습이 필요해 보입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걸 찾고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하고 희망과 용기, 올바름, 배려 같은 긍정에너지를 전해주는 것들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글감을 보는 눈이 생기고 그걸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힘도 길러지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자기 글을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일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읽는 이의 관점에서 자기 글을 보는 것이지요. 그러면 단어 하나, 표현 하나도 정확하게 찾아보고 확인한 다음 쓰게 되고 이왕이면 문맥과 문장에 가장 어울리는 말과 표현을 고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적절한 것, 읽는 이에게 가장 와 닿을 하나를 골라내는 데 들이는 수고와 노력이 아깝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초고를 완성하면 퇴고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솔직히 초고는 다 비슷하게 ‘별로’입니다. 초고를 얼마나 더 많이, 더 오래 끈질기게 고칠 수 있느냐가 좋은 글과 어설픈 글을 나눕니다. 내가 보기엔 초고를 끝냈다는 건 이제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고치는 걸 싫어하거나 귀찮아 하면 결코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이걸 뒷받침해 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도 있습니다. 헤밍웨이가 말했습니다. “처음 쓰는 건 뭐가 됐든 다 쓰레기다(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 청첩장 문구 몇 줄 쓰다가 막히니까 별 생각을 다 하게 되네요. 쩝… ^^*
sglee640@beyond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