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8 08:35  |  오피니언

[신형범의 千글자]...우리 사회를 지켜내는 사람들

[신형범의 千글자]...우리 사회를 지켜내는 사람들
1965년 경남 하동 출생.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86년 사법시험 합격. 창원지법, 부산고법 부장판사를 거쳐 2019년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임명됐습니다. 2024년 10월 공석이 된 헌법재판소장의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문형배 재판관 프로필입니다. 그저 학벌이나 경력이 아닌 그만의 특색 있고 재미있는 소개문을 쓰고 싶었지만 세상에서 통용되는 거의 모든 프로필이 이런 형식입니다.

그가 2007년 창원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할 때입니다. 심판대에 선 30대 남자는 자신이 묵던 여관에서 불을 지르려다 ‘방화미수’로 붙잡혔습니다. 직장도 잃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자살하려고 성냥통에 불을 그었다는 겁니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 않아 바로 진화됐고 피해는 없었습니다.

들어보니 사정이 딱하더랍니다. 문형배 판사는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고인, 일어나세요. ‘자살’이라는 말을 열 번 외치세요.” 어리둥절한 남자는 엉거주춤 일어나 외쳤습니다. “자살 자살 자살….” 그러자 문 판사는 말합니다. “피고인, 어떠세요? 저와 여기 계신 방청객들은 ‘자살’이 아니라 ‘살자’로 들리는데요…”

그리고 말을 잇습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죽으려고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자살’이 ‘살자’가 되는 것처럼 때로는 죽으려고 하는 이유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선물로 줄 테니 책을 읽어 보고 난 뒤에 죽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세요.”

젊은 남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원래 ‘현주건조물 방화죄’는 형량이 높습니다. 게다가 이 경우는 고의 방화이기 때문에 가중처벌이 가능한데도 문 판사는 조기에 진화돼 피해가 없고 한 젊은 생명이 살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에피소드 하나 더. 2019년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로 임명돼 국회 청문회가 열리던 때였습니다. 질의에 나선 국회의원이 문 후보자에게 묻습니다.

“신고한 내용을 보니까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들 평균 재산이 한 20억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문 후보자는 6억7545만 원을 신고했습니다. 만약 헌법재판관이 된다면 가장 적은 재산을 신고한 재판관이 됩니다. 그래도 27년 동안 법관 생활을 했는데 6억7천은 너무 적게 신고된 것 아닌가요?”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습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통계를 보니까 가구당 평균 재산이 한 3억 남짓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재산은 한 4억 조금 못 됩니다.”

“신고한 재산이 6억7천인데요?”

“그건 아버지 재산을 합한 거고요, 제 개인 재산은 4억이 안 됩니다. 평균 재산규모를 좀 넘어선 것 같아 지금 반성하고 있습니다.”

법과 양심과 공적 책임보다는 이익과 자리와 사적 연줄에 지배 받는 이들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문형배 재판관 같은 사람들이 조용하지만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사회가 지탱되는 것 같습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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