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千글자]...우리 사회를 지켜내는 사람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4080833340886946a9e4dd7f210178104111.jpg&nmt=30)
그가 2007년 창원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할 때입니다. 심판대에 선 30대 남자는 자신이 묵던 여관에서 불을 지르려다 ‘방화미수’로 붙잡혔습니다. 직장도 잃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자살하려고 성냥통에 불을 그었다는 겁니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 않아 바로 진화됐고 피해는 없었습니다.
들어보니 사정이 딱하더랍니다. 문형배 판사는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고인, 일어나세요. ‘자살’이라는 말을 열 번 외치세요.” 어리둥절한 남자는 엉거주춤 일어나 외쳤습니다. “자살 자살 자살….” 그러자 문 판사는 말합니다. “피고인, 어떠세요? 저와 여기 계신 방청객들은 ‘자살’이 아니라 ‘살자’로 들리는데요…”
그리고 말을 잇습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죽으려고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자살’이 ‘살자’가 되는 것처럼 때로는 죽으려고 하는 이유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선물로 줄 테니 책을 읽어 보고 난 뒤에 죽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세요.”
젊은 남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원래 ‘현주건조물 방화죄’는 형량이 높습니다. 게다가 이 경우는 고의 방화이기 때문에 가중처벌이 가능한데도 문 판사는 조기에 진화돼 피해가 없고 한 젊은 생명이 살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에피소드 하나 더. 2019년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로 임명돼 국회 청문회가 열리던 때였습니다. 질의에 나선 국회의원이 문 후보자에게 묻습니다.
“신고한 내용을 보니까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들 평균 재산이 한 20억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문 후보자는 6억7545만 원을 신고했습니다. 만약 헌법재판관이 된다면 가장 적은 재산을 신고한 재판관이 됩니다. 그래도 27년 동안 법관 생활을 했는데 6억7천은 너무 적게 신고된 것 아닌가요?”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습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통계를 보니까 가구당 평균 재산이 한 3억 남짓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재산은 한 4억 조금 못 됩니다.”
“신고한 재산이 6억7천인데요?”
“그건 아버지 재산을 합한 거고요, 제 개인 재산은 4억이 안 됩니다. 평균 재산규모를 좀 넘어선 것 같아 지금 반성하고 있습니다.”
법과 양심과 공적 책임보다는 이익과 자리와 사적 연줄에 지배 받는 이들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문형배 재판관 같은 사람들이 조용하지만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사회가 지탱되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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