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며 소비트렌드도 달라졌다. 불황에 대응하는 소비자들이 ‘무조건적인 절약’보다 의미 있고 실용적인 소비에 집중하는 ‘선택적 소비’에 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9일 한국 딜로이트 그룹이 유럽, 북미, 아프리카 등 17개국 소비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인터뷰를 기반으로 발표한 ‘Consumer Signals 25.Q1’ 리포트에 따르면, 최근 소비 트렌드는 ‘절제에서 선택’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국의 소비자 재정적 웰빙 지수(FWBI, Financial Well-Being Index)는 90.3으로 집계됐다. 조사대상국 중 7개월 연속 최하위 수준에 머물렀다. 미국은 한때 105를 넘겼던 FWBI가 2월 기준 99.9를 기록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또 소비자 인플레이션 우려 지수의 경우 2월 기준 글로벌은 76%, 미국은 79%, 한국은 68%를 기록했다.
소비의향 지수는 희비가 엇갈렸다. 3월 기준 한국과 미국 소비의향 지수는 각각 -6%, -9%를 기록했으나 글로벌은 2%의 준수한 흐름을 보였다. 한국은 체감 경기 둔화와 생활물가 상승이, 미국은 정책 불확실성과 인플레이션 우려 심화가 각각 소비 지출 판단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유럽과 호주 등은 임금 인상률이 인플레이션을 상회하며 소비 여력 회복의 마련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의 품목별 소비의향 지수를 살펴보면 식료품(15%), 저축 및 투자(14%), 여가 활동(12%), 주택/거주 비용(10%) 순서다. 생활필수품 가격 상승으로 불가피하게 필수 항목 비중이 확대된 결과다.
무조건 절약보다는 선택적 소비로의 인식 전환이 이뤄진 것도 눈에 띈다. 특히 18세부터 34세의 여가 지출 비중이 전 연령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들은 체험 중심 여가 소비를 적극적으로 지향, 가치와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대변한다. 최근 인플레이션이 둔화되고 있지만 식료품 구매 시 경험하는 재정적 스트레스에 대한 지표인 식료품 소비절약 지수(FFI)는 여전히 상승세다. 2월 기준 글로벌은 96.6, 한국은 98.2로 가격에 예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소비자들의 과시성 소비 비중은 여전히 높았다. 글로벌 17개국 과시성 구매 금액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순위는 지난해 12월 9위에서 올 1월 7위, 2월 5위로 상승했다. 17개국 평균 과시성 구매 금액은 52달러, 미국은 50달러였으나 한국은 55달러에 달한다. 이는 고환율에 따른 체감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한국 소비자가 과시성 소비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구매 여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시사하며 특히 식자재(33%)와 의류·액세서리(33%)의 소비 비중이 높았다.
딜로이트는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감 확대로 소비는 감소하고 있으나, 오히려 의미 있고 실용적인 선택적 소비는 유지되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불확실성 확대로 심리적·재정적 불안 심화가 벌어지고 있으나 지출 축소 기조 속 선택적 소비는 유지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보이는 실용 소비를 통한 소비 정당화가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딜로이트 그룹은 소비트렌드의 변화에 따른 기업의 전략도 제시했다. 경험과 자기표현을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에게는 가치와 브랜드를, 실용적 소비를 중요시하는 중장년에게는 가성비와 기능성을, 건강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시니어에게는 웰니스와 안정감과 신뢰성을 강조하는 등의 타깃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또 프리미엄과 실용성으로 소비 정당화를 키우고 소비의향이 높은 품목과 과시성 소비가 집중되는 품목에 마케팅을 집중하는 선택적 소비 공략 마케팅 리디자인에도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김태환 한국 딜로이트 그룹 소비자 부문 리더는 “이제 기업들은 전방위적인 소비 자극이 아닌, 타겟별로 차별화된 접근과 우선순위 조정에 나서야 한다”면서 “본 리포트가 유통 시장의 변화하는 트렌드에 대한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현희 비욘드포스트 기자 yhh1209@beyond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