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千글자]...몇 살이세요?](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4110750470005646a9e4dd7f11919214355.jpg&nmt=30)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그렇게 나이를 궁금해하는지 이해는 합니다. 조금만 친해지면 형님, 동생이고 처음 보는 사람도 선배, 후배로 서열을 정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이차가 벌어지면 쉽게 서열이 정해지지만 비슷한 또래들끼리는 좀 복잡합니다. 양력 음력 생일이 다르다, 호적이 잘못됐다, 빠른 년생이라 친구들이 다 그 나이다,라며 서열에서 손해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나 관계에서 나이가 권력으로 작동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요즘은 바뀌는 분위기입니다.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나이는 권력이 아니라 서로 부담스러워하는 ‘관계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나만 해도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나이가 많다고 하면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 일부러 나이를 줄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여전히 나이부터 따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나이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관계를 끊어낼 수 없다면 나이부터 따지는 사람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낫다는 게 경험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나이 말고 알고 싶지 않은 건 또 있습니다. “어디 사세요?” 라는 질문도 안 합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부동산이 계급인 사회입니다. 자칫 선입견을 갖거나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는 것을 미리 차단하는 나름의 조치입니다. 편견인가요? 어쨌든 나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즘 친구들은 기성 세대의 고리타분한 방식 대신 서로 MBTI를 묻는 것 같습니다. 나이, 재산, 배경 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래도 완벽하게 알기 위해 곧바로 직진하는 게 아니라 “너 T지?” “E세요, I세요?”처럼 간보기를 먼저 합니다. 일종의 스몰토크 같은 겁니다. 어느정도 생각이 좁혀지면 마지막에 알파벳 네 개를 모두 맞춰보고 “그래, 우린 이런 게 맞아” “이건 나와 다르네”라며 서로 확인하고 인정하고 관계에 대해 수긍하기 시작합니다.
성격 유형에 대해 얘기를 나누니 서열이 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비슷하게 느끼는 것에 연대감을 가지니 부담이 없습니다. MBTI를 맹신하는 분위기에는 걱정이 있지만 짧은 시간에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새로운 문화라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봅니다.
최근 어떤 어른을 만났습니다. 그 나이 또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옛날 무용담이나 과거 화려했던 경력을 뽐내는 대신 지금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자라는 부분을 서로 채워 완성된 형태로 가까이 가자고 독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또 만나서 지혜를 얻고 싶은 그런 어른도 많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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