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영어 원서 읽기와 소크라테스를 위한 변명제가 학원 원장으로 학부모들을 상담하면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기원전 470년경에 태어난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하면 떠오르는 말이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정작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델포이 아폴론 신전 벽에 새겨진 문구 하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러나 평생을 이 말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그 물음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얼마나 귀찮고 끈질기게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는지 당시엔 질문왕 소크라테스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귀찮은 철학자로 불렸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영어 교육 이야기가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느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게 영어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서를 꼭 읽어야 하나요?”
그럴 때 저는 학부모님에게 이렇게 되묻습니다.
“아이가 영어책을 어려워할 때, 부모님은 어떻게 도와주시나요?”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아이들이 영어를 ‘공부’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자기 언어’로 익히기 위해서는 영어 원서 읽기가 단순한 학습 도구가 아닌, 영어라는 언어와 서양 문화, 그리고 영어를 사고력을 기르는 통로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Think before you speak. Read before you think.”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생각하기 전에 읽어야 합니다.
영어 공부법을 설명할 때 저는 영어를 영어로 받아들이는 노력부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영어를 한국어로 해석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책의 내용을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문장 하나하나를 한국어로 번역해 알려줍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유추하며 받아들입니다. 문학은 시험문제가 아닙니다.
완벽한 해석보다는, 맥락 속에서 언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험이 더 중요합니다. ‘성문종합영어’처럼 구조 분석이 필요한 문장이 아니잖아요. 또 모든 단어를 알 필요도 없습니다
한 아이가 어릴 적, 친구와 싸웠던 일화가 있습니다.
텃밭에서 애벌레를 보고 친구가 “애벌레야!”라고 하자,
이 아이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니야! Caterpillar야!”
또 한 중학생은 단어 시험에서 'tide'에 '비서'라고 썼습니다.
‘조수(tide)’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Secretary(비서)’와 헷갈렸다고 하더군요.
웃픈(웃기고 슬픈) 이야기지만, 이런 해프닝은 언어를 단어로만 배울 때 흔히 생기는 현상입니다.
언어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문화이자 감정, 그리고 삶의 방식입니다.
영어는 한국 부모님과 아이에겐 생소한 문화이자 언어입니다.
영어유치원을 다닌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동양문화권 한국에선 여전히 영어권 문화는 낯선 세계입니다. 그래서 이해 중심의 영어 원서 읽기가 중요합니다.
어린 아이가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시각 자료와 행동을 함께 활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 AR(Accelerated Reader) 프로그램 기준에 따르면, 책의 난이도는 숫자로 구분되며 그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특히 AR 1.0~1.9 단계(미국학교 기준 초등 1학년~ 1학년 9개월 수준)의 책은 짧은 문장과 그림이 많아, 몸으로 반응하며 읽기에 적합합니다.
저는 영어유치원 원장 시절 교사들에게 이렇게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Run”이 나오면 같이 뛰어보세요. “Dance”가 나오면 함께 춤추세요.
색깔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집 안의 색 찾기 놀이를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 방식은 아이의 언어 뇌를 자극하고, 듣기와 말하기 능력을 동시에 끌어올립니다.
부모님들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은 ‘다른 말’로 바꿔주세요
우리말 책을 읽을 때도 어려운 표현은 풀어서 설명하잖아요.
영어책도 마찬가지입니다.
Synonym(비슷한 단어), Antonym(반대말), 어원이나 상황 설명, 이런 방식으로 ‘해석’이 아닌 ‘이해’로 연결해야 합니다.
아이의 언어 감각은 단어 수보다 맥락 파악력에서 출발합니다.
마지막으로 팁을 꼽아보자면 독후 활동은 생각을 키운다는 겁니다.
책을 다 읽고 줄거리를 모두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을 확장하는 시간입니다.
아이에게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았어?” , “주인공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이런 질문들을 해봅니다.
이런 질문들은 단순한 독서를 비판적 사고로 연결시켜 줍니다.
읽고, 말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언어는 자연스럽게 ‘자기 것’이 됩니다.
책은 느리지만 강한 힘을 가집니다.
AI, ChatGPT, 유튜브, 틱톡 등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우리는 자주 ‘책’을 잊습니다.
하지만 책은 즉각적인 자극 대신 깊은 내면을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권의 영어책을 해석 없이, 영어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단어와 문법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그 언어는 시험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아이만의 ‘목소리’가 될 것입니다.
김미나 인사이트 영어학원 원장(신도림)